취미중독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글쓰기/단편소설

단편 소설 1. 12편 완.

depilled 2025. 8. 9. 17:03

12 편. 민수의 여섯 번째 회귀

-민수-

부서졌던 목뼈가 맞춰지듯 이어졌다. 어긋난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신경이 다시 연결되면서 감각이 서서히 돌아왔다. 고통이 거꾸로 흐르며 사라졌다.

비행기가 조립되듯 복원되었다. 부서진 동체가 다시 모이고, 찢어졌던 선체가 봉합되었다. 유리 파편이 튕겨 올라 창문으로 끼워졌다. 폭발과 함께 터져 나간 불길이 거두어지고, 화염 속에 일그러졌던 시간마저 되돌아갔다.

그리고 유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알았네요… 생명의 은인을.”

민수는 기체가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며 과거를 향해 휘몰아치는 감각을 온몸으로 견뎠다. 그 순간 그의 시야는 기내 좌석을 지나, 공항, 그리고 아침의 호텔방까지 거꾸로 펼쳐졌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반복될 뿐이라는 것을.



시간은 흐르고,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도 다시 되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눈을 감으며 천천히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익숙한 회귀의 감각이 오지 않았다. 고통도 없었고, 목이 부러지는 끔찍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졌다. 눈을 뜨자,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저녁이었다.

그는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민수는 호텔을 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걸음은 이상했다. 그의 발은 마치 과거를 향해 뒷걸음질 치듯 움직였고, 손과 팔의 움직임 또한 거꾸로 흘렀다. 익숙한 식당 문을 열면서도 그는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닫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식당 내부는 그대로였지만, 모든 것이 거꾸로 움직이는 듯했다. 재홍과 유진은 이미 식당에 도착하여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술은 기묘하게 움직였고, 소리 역시 희미하게 뒤집힌 채 그의 귀에 닿았다.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은 입을 닦은 휴지를 다시 곱게 펴서 꽂이 속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모든 행동이 정해진 대로 되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무언가에 이끌려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절망적인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번엔 왜 여기까지 돌아오게 된거지.'

'재홍이건, 유진이건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나에게 떠들어 대봤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명의 은인을 찾았으니 비행기 추락을 막아달라고? 고작 한쪽 다리로 간신히 살아가는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거지?'

민수는 차오르는 격한 감정들을 속으로 쏟아내다 이내 절망감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결말도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계속해서 과거로 되돌아가다 결국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가고 말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이대로 계속 되감기 된다면 차에 있던 내 아내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음식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재홍이 문을 뒷걸음치며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유진도 귓걸음으로 식당을 떠났다. 

민수는 혼자 남아 있었다.

그는 이곳에 왜 있었던 걸까.



이곳은 그가 아내와 함께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거꾸로 흐르듯이, 민수의 시야 속에서 장면들이 뒤집혀 갔다.
아내가 그와 함께 이곳에 앉아있었다. 따뜻한 밥을 함께 먹고 있던 순간이 다시 지나갔다.
그러나 다시 되감아질수록,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는 사라졌다.

민수는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죽으려 했다. 그는 사실 비행기가 떨어지길 속으로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모든 것을 잃은 슬픔을 남들도 느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시간을 멈출 방법도, 거슬러 올라가는 법도 몰랐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몰랐기에, 멈추는 법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 멀리 흐르기 시작했다.





아내가 살아났다.

그녀와 함께한 날들이 다시 펼쳐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함께한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십 년, 이십 년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가족이 함께 찍었던 사진 속에서 한 명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민수는 점점 젊어졌다. 결국 그는 30대 초반이 되었다.

그의 손은 거칠었고,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과거의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몸은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식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는 동네 골목 어귀에 작은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동네 아이들이 들러 간식을 사고, 책상을 비추는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공간. 언제든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곳.

하지만 현실은 그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다. 가난했던 민수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작은 가게를 꾸리는 대신 매일같이 정비사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엔진오일이 묻은 손으로 차를 고치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겠다는 소망은, 결국 쇳가루가 흩날리는 차고 안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비소에 대형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민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브레이크가 이미 수명을 다했고,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버스 회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비소에 최소한의 수리만 요구했고, 기사에게도 추가 정비를 요청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그저 타이어 두 개만 교체하고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버스 기사는 한숨을 내쉬며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회사에서 돈이 안 나온다니까요. 어쩌겠어요. 그냥 타야죠."

그 말에 민수는 속이 쓰렸다. 브레이크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 기사는 달리는 철제 덩어리 안에 수십 명의 승객을 태우고 도로로 나설 터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민수는 거기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손끝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듯했다.

그는 떠나는 버스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기사님.”

운전석에서 고개를 돌린 기사가 민수를 바라보았다.

민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입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브레이크, 교체해드릴게요.”

완.

'글쓰기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소설 1. 11편  (5) 2025.08.09
단편 소설 1. 10편  (3) 2025.08.09
단편 소설 1. 9편  (4) 2025.08.09
단편 소설 1. 8편  (3) 2025.08.09
단편 소설 1. 7편  (3)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