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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1. 4편

depilled 2025. 8. 9. 15:46

4 편. 두 번째 회귀 - 질식사 (1)

-재홍의 시점-

재홍은 두 번의 비행기 추락을 겪고 다시 사고 당일 아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재홍에게는 언제나 첫 날일 뿐이었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홍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 10분.
"뭐야? 내가 늦잠을 잤다고?"
눈이 번쩍 떠졌다. 평소보다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그는 서둘러 욕실로 향하며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샤워는 생략하고 간단히 얼굴만 씻은 후,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들었다.
호텔 로비로 뛰어나오자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펼칠 틈도 없이 도로로 나가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택시 한 대가 그를 태웠다.
"공항이요. 빨리 가주세요."
차 안에서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평소처럼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아침이 아니었다. 숨 가쁜 심장 박동이 기분 나쁜 불안을 자아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계산도 대충 하고 달려갔다. 택시에서 내려 터미널 입구로 향하는데, 누군가와 세게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사과하며 재홍은 고개를 들었다.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긴 상대방이 그를 바라보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재홍은 이상하게도 그 시선을 기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늦은 상황이 더 급했다.
그는 한번 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체크인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뒷좌석에 앉았다.

-유진의 시점-

그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행동을 강제로 따라가고 있었다. 내면 속 유진은 두 번의 비행기 추락을 맨정신으로 겪은 후 간신히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공항 입구에 도착하여 걸어가는 그 순간, 누군가 뛰어와 걸어가는 유진과 부딪혔다. 유진은 균형의 무너짐에 의한 충격을 느끼기에 앞서 머리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는 전율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 해방된 듯 몸이 유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상황을 이해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무언가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직감을 믿기로 했다.
비행기 추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지난 회귀에서 마지막 순간에 들었던 스튜어디스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탑승 전에 수상한 승객이 있었다고 했어.' 
'이제 탑승 시간이 얼마 안남았어. 빨리 찾아야 돼'
이번에는 반드시 그 단서를 잡아야 했다. 유진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항 터미널은 언제나처럼 수많은 승객들로 붐비고 있었고, 그는 수상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처음 유진의 눈에 들어온 건 시큐리티와 다투고 있는 승객이었다. 승객이 과한 액션을 취하는 탓에 유진은 의심을 품고 다가갔으나, 몇마디 후 이내 자리를 옮겼다.
그때였다. 유난히 큰 수화물을 끌고 가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검은색 가방을 힘겹게 끌고 가는 남자의 모습이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본능적으로 그는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다.
남자는 한적한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진은 서둘러 따라가면서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는 모습이 보일까 조심스레 엿보았다. 남자는 칸에 들어갔고, 이내 낮고 거친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네, 처리했습니다. 확실하게."
유진은 숨을 삼켰다. '처리했다'라는 말. 무엇을? 사람을? 그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비행기에서 사고가 나야 하니까… 걱정 마세요. 예정대로 될 겁니다."
순간, 유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재빨리 결단을 내렸다. 이 남자가 수상한 승객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바로 화장실을 나와 근처에 있던 공항 경찰에게 달려갔다.
"방금 저기 화장실에 들어간 남자… 그 사람이 뭔가 수상해요. 방금 통화에서 사고가 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항 경찰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유진의 절박한 표정과 구체적인 증언을 듣고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남자는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유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비행기가 안전하게 도착할 것이라고 믿으며, 그는 여유롭게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번엔 창가 자리에 앉았으니, 이번엔 비어 있는 통로 좌석으로 이동했다.
‘이제 무사히 갈 수 있겠지. 몸도 돌아왔으니까 이 말도 안되는 회귀 현상도 끝날거야.’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정적인 비행을 유지하는 듯했다. 큰 일을 해냈음의 안도감에 유진은 비행기 이륙 후 금새 잠에 들어버렸다.
그러나 30분쯤 지나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도 목을 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제야 유진은 깨달았다. 무언가 또 잘못되고 있었다. 그는 헛구역질을 하며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기내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른 좌석에 앉아있던 재홍 역시도 질식으로 다시 한 번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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